2학년 강서윤 학생은 란제리 소녀시대(김용희)를 낭독했습니다.
혜주와 진이 오빠가 무슨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고 있다. 계속 귀가 솔깃하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정말 좋던데요?”
“어? 다 읽었구나! 그렇지? 싱클레어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진이 오빠의 낮게 공명하는 목소리 센베이 과자가 내 입에서 녹고 있다.
“오빠가 빌려줘서…. 그때….”
갑자기 빵집에 사람들이 들어오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난다. 혜주의 말이 끊기다 연결되고 다시 끊긴다.
진이 오빠와 혜주는 서로 책을 빌려주는 사이구나! 데미안을 빌려줬구나? 언제?
나는 더욱 귀를 쫑긋한다. 온몸에 신경이 귓바퀴와 고막과 달팽이관에 모두 집중된다.
혜주와 진이 오빠 쪽으로 모인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이 구절이 정말 좋았어요. 그렇지? “압락사스..압락사스…. 압락삭스….
환한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신….
우리 안에 악마성과 신성이 있는 것은 압락삭스가 우리 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펴기 때문이라는 거…
그것도 흥미로웠어요. 우리가 나무랄 대 없이 정상적인 인간이 되면 그때 압락삭스가 우리를 떠난다고.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사상을 담을 새로운 그릇을 찾아 떠나는 거라고 …”
“그래, 혜주야 우리 내면의 인도자는 우리 안에 있어 알에서 나오려 투쟁하고 있는 거야”
알은 뭐고 새는 뭐지? 알을 깨고 신에게로 날아가는 새.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이거 씹어라. 껌”
‘아니 이 상판대기는 뭐꼬’ 똥문이가 얼굴을 내 앞으로 내민다. 바리캉으로 머리를 잘못 밀었는지 머리가 쥐 파먹은 것 같다.
바리캉 기계 독이 올랐는지 까까머리 군데군데 붉은 종기까지 나 있다 똥문이는 히죽 웃더니 아카시아 껌을 건넨다.
“아…. 아 아니 됐다.”
“아카시아 껌 맛있다 씹어라”
“그. 그래” 마지못해 나는 아카시아 껌을 받아 껍질을 벗겨 우적우적 씹었다. 씹으면서 혜주와 진이 오빠 쪽을 번갈아 본다.
아버지가 씹는 은단 껌보다는 낫지 뭐….
“근데 어떤 가수 좋아하는데…”
“….”
“저…. 어떤 가수를….”
나는 그제야 다른 쪽에 있던 신경을 거두고 똥문이 얼굴을 본다.
“아니 그냥 좀…. 그냥 좀 이대로 있자. 이대로….”
나는 낮게 목소리를 깔고 힘을 주며 똥문이를 째려본다. 똥문이가 조금 움찔하는 표정이다. 그러니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으응. 그냥, 혜은이. 혜은이”
나는 귀찮은 듯 한마디 던진다. “응, 혜은이? 나도 혜은이 좋아하는데 정말인가?”
똥문이가 갑자기 반색한다. 혜은이는 ‘우리 돼지’가 좋아하는 가수거든.
“그러니까. 저번에 책 빌려줄 때 그 안에.”
이번에 다시 혜주 목소리다. 뭐 그 안에? 그 안에 뭐가 있다는 거지?
나는 궁금증이 목구멍까지 솟아 나와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다.
진이 오빠가 혜주에게 책을 빌려주면서 책 안에 뭔가를. 넣었다? 뭐 그런 이야긴가?
그런데 다시 내 온몸의 곤두선 신경을 싹둑싹둑 자르는 소리가 들렸다.
“혜은이 노래 중에서는 어떤 노래를.”
으윽 미칠 지경이다
“으응. 제3 한강교.”
갑자기 똥문이가 붉은 잇몸을 드러내고 웃는다.
“정말인가? 나도 그거 좋아하는데 혜은이가 디스코로 버전 업 해서 부른 노래잖아.
혜은이의 비음은 최고다 아이가 옛날 김추자 님은 먼 곳에도 비음이 끝내 주지만 혜은이의 비음도 환상이지 디스코 춤도 그렇고.”
“니, 니 내 말 듣고 있나?”
“..으응”
“야 이쩡희” 이정희 이정희 이정희 아 이젠 정말 돈다. “야 니 정말 이럴래? 나 바쁜데.. 자꾸 귀찮게 할래?”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갑자기 진이 오빠, 기욱이, 빵집에 있는 모든 고등학생들이 나를 쳐다본다.
귀밑까지 빨갛게 달아오른다 목구멍이 바짝 타들어간다.